18세기 영ㆍ호남 유학의 학맥과 학풍

  • 조성산
ISSN: 1598-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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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8세기 영남과 호남은 학술문화가 발전하기에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기축옥사ㆍ무신란, 그리고 18세기 이후 심화되는 경향분기 과정으로 인해 두 지역은 여러모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제환경은 이 두 지역 학풍의 전개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18세기 영남은 학봉-갈암-대산 학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 외에 이들 학맥과 직ㆍ간접적인 관계를 가졌던 서애학맥, 최흥원, 남용만, 박손경 등이 각각 개성 있는 학풍을 전개시켜 가고 있었다. 18세기 영남 학풍을 정리하면 첫째로 이기심성론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이황의 ‘이기불상잡’을 강조하면서 율곡학파 성리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둘째는 서애학맥 일부에서 진행된 상수학과 천문학 연구였다. 이 연구는 유성룡-유원지의 영향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비록 전통적인 주자학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영남학풍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18세기 호남에 사상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학풍은 서경덕 계열의 학문경향이었다. 당색을 떠나 이 시기 호남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상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대표적인 이들은 신경준ㆍ황윤석ㆍ위백규 등이었고, 그 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영향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명물도수지학과 경세학, 실용학에 대한 다양한 저작들이 나올 수 있었고, 이는 훗날 호남의 실학으로 명명되기도 하였다. 서경덕 학풍의 영향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면 18세기 당대의 것으로는 호락논쟁의 영향을 지적할 수 있다. 황윤석, 이기경, 양응수는 낙론에, 위백규는 호론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8세기 영남지역이 자체의 지역적 전통 속에서 학풍을 전개시켜 가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호남지역은 서경덕 학풍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호락논쟁과 같은 중앙학계의 동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지역이 처한 정치ㆍ사회적 환경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영남지역이 노론의 정치 공세를 막아내고 남인으로서의 사상적ㆍ정치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름의 지역적 학술전통을 지켜야 했지만, 호남지역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점에서 자유로웠기에 중앙학계와의 연결도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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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산. (2006). 18세기 영ㆍ호남 유학의 학맥과 학풍. 국학연구, 9, 175–209. Retrieved from http://www.dbpia.co.kr/Article/NODE0107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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